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주는 가치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인터뷰 미션잇 편집부 사진 제공 미션잇 편집부
용인시의 느티나무도서관은 편히 기대 쉴 수 있는 곳이다. 도서관이 만약 사람이라면 이 도서관은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활짝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이다. 마을 사람 누구나 찾아오고, 담소를 나누고, 뭔가를 함께해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공공도서관이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 깨닫게 한다. 함께 식사하던 중 자폐성 장애를 가진 청년과 친구처럼 대화하는 박영숙 관장의 모습이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지향하는 가치를 잘 나타낸다. 오랜만에 멋진 어른을 만난 기분이다.

2000년 아파트 지하상가에서 느티나무도서관을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도서관을 만들게 되셨는지 관장님과 느티나무도서관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올 수 있는 공부방 같은 걸 만들고 싶다는 꿈이 20대부터 있었어요. 제가 학교를 다니던 80년대에는 공부방이란 게 있었어요. 지금 지역아동센터의 전신이었죠. 그게 흔히 달동네라고 하는 어려운 지역이나 철거 예정 지역 같은 곳에 있었거든요. 제대로 돌보는 사람이 없는 위험한 환경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많았죠. 그때 ‘누구도 한 인간의 꿈의 크기를 결정할 권리는 없다.’는 생각을 굉장히 강하게 했어요. 누구든지, 어떤 환경에 있든지, 꿈을 꾸고 가슴이 뛰고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걸 도전해볼 수 있어야 하고, 적어도 아이들이 그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어떤 환경에 있든지, 꿈을 꾸고 가슴이 뛰는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네요.
제가 만난 아이들 중에는 부모가 두 분 다 시각장애인인 경우가 많았어요. 부모님이 지하철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하모니카를 불면 아이들이 바구니를 들고 돈을 받는 일을 하는 거죠. 그러다 같은 반 아이를 만나기도 해서 그게 죽기보다 싫은…. 이런 아이들이 겪는 제한적인 환경이 ‘너희들이 앞으로 살 세상은 이만큼이야.’라고 하는 것 같아서 절망적이었어요. 좀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그러면서 잠재적인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것. 그게 인간의 권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누구든지 와서 좀 더 나은 삶을 꿈꾸고 작은 것부터 시도해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어요. 그러려면 누구나 올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조건이었어요. 그리고 그 공간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서관을 만들게 되었죠. 2007년에 지금의 건물을 짓기까지 지하상가에서 도서관을 운영하는 7년 동안 소중한 경험을 했죠. 그때 도서관의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확인하며 본격적으로 도서관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서관계의 실험실 같은 역할을 바라면서 도서관법 기준을 충족하는 건물을 짓고 공공도서관으로 등록했죠. 도서관의 규모를 키운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어요. 아이들이 행복해지려면 먼저 어른들이 행복해야겠다는 걸 너무너무 분명하게 확인했거든요. 간판은 ‘어린이 도서관’이라고 붙어 있었지만 어른들이 볼 자료가 전체의 절반보다 많았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죠. 그리고 도서관에 오던 어린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몸도 커지면서 공간과 자료에 대한 갈증도 계속 커졌기 때문에 새로 만드는 도서관의 규모가 확대된 것도 있어요.

여전히 도서관에는 다양한 장벽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위탁받아 운영하시는 도서관에서도 장벽을 낮추기 위해 시도하시는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인식과 태도의 문제인 것 같아요. 도서관을 공공의 공간으로 알고 있지만 내가 그 공공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이 지금도 많죠. 저희는 그런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경험을 자꾸 마련하려고 해요. 예를 들면, 파주에서 저희가 위탁운영하고 있는 한 도서관은 동 행정복지센터 위에 있는데 길 건너편 시장에 이주민들이 많아요. 그래서 시장에 책을 가지고 나가요. 절대 오지 않을 사람, 올 생각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 도서관을 만나는 경험을 건네는 거죠. 한 6년쯤 느티나무도서관이 있는 동네에서 책 수레를 운영하면서 그런 경험이 유효하다는 걸 확인했거든요. 빵집, 미장원, 편의점, 휴대폰 가게, 인테리어 가게에 찾아가서 안내문도 드리고 책도 하나씩 갖다 놓고 했는데, 칼국수집 사장님이 ‘그 도서관에 청록파도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고등학생 때, 청록파 시인을 좋아해서 다 외웠는데 학교를 졸업한 뒤로 책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는 거예요. 주방에 계시던 분은 국자를 손에 든 채 고개를 내밀고 ‘달달한 소설’ 갖다줄 수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찾아가서 만나면 욕구가 발견이 돼요. 그렇게 6년을 했더니 시간이 없어서 못 오신다던 분들이 오시더라고요. 미장원을 열고 닫는 시간은 안 바뀌었는데 말이죠. 그러니까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라 도서관이 내 삶에 들어오는 경험이 없으셨던 거죠.
‘도서관이 내 삶에 들어오는 경험’이라는 말이 인상 깊네요.
도서관이 그렇게 사람들의 삶 속에 들어가 삶의 의미를 같이하지 않는다면 사회가 도서관을 버릴 거라고 생각해요. 필요한 건 구글, 네이버에서 보면 되고 책은 거들떠도 안 볼 수 있죠. 그런데 도서관이 이렇게 해야 되는 중요한 이유는 도서관이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니고요, 이 세상에 점점 더 도서관이 필요하고 중요해지기 때문이에요.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어서 학교에 다니면서 배운 것만으론 살 수가 없잖아요.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하게 늘어서 쏟아지니까 오히려 정보가 없는 것 같은 상태가 되죠. 이렇게 빠른 변화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따라가려면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시도해볼 사람들을 만나서 작당모의를 해볼 수 있는 곳이 필요한 거죠. 저희가 컬렉션에 집중하는 이유예요. 종이책은 물성의 힘이 있기에 종이책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정보의 내용에 따라서는 짤막한 동영상 하나가 책 10권보다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입구 전시실에는 책들 사이에 태블릿을 놓고 영상을 켜둬요. 도서관 자료라고 해서 반드시 책만 있는 건 아니에요. 신문 스크랩과 연구 논문도 같이 꽂아둬요. 정보에 대한 정의와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어요. 다양한 매체의 정보들이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도서관의 서비스 또는 공간의 운영 방식을 고민해서 찾아가고 있어요.
도서관에서 포용성은 왜 중요할까요?
도서관이나 공공서비스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의 모드는 이제 바뀔 필요가 있어요. ‘좋은 책을 빠짐없이 잘 골라서 이용하기 편하게 제공한다.’가 아니고요. 무언가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고, 이 사람들이 시도해볼 수 있는 순간에 함께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시혜적인 것에 반감이 심한데요. 그냥 같이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가져왔던 선입견이랄까, 그 틀이 열릴 필요가 있어요. 특별한 대상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하는 게 아니라 도서관에 찾아오는 다양한 이용자들에 대해 마땅히 알아야 될 걸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 이제라도 하는 거죠.

누구든지, 어떤 환경에 있든지, 꿈을 꾸고 가슴이 뛰고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걸 도전해볼 수 있어야 하고, 적어도 아이들이 그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박영숙님 인터뷰 전문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6호 <도서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