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은 어떻게 쉬운 디자인이 되는가? No.147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나는 그 출발이 ‘읽지 않아도 행동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정보를 글로 전달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와 방식으로 글을 읽고 이해하지는 않는다. 외국인, 어린이, 발달장애인, 인지 저하가 있는 고연령 어르신 등 글로 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이것을 개인의 결핍이나 한계로 보면 안 된다. 우리 사회의 정보 설계가 다양한 사람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제약’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읽지 않아도 행동할 수 있는 디자인은 더 많은 사람을 환대하는 방식이 된다.

아이콘과 픽토그램은 공간과 사람 사이의 말 없는 소통이다.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혹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공간을 스스로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정보 전달 방식이다. 나 역시 북유럽에서 외국인의 입장으로 여러 뮤지엄과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텍스트보다 먼저 보이는 아이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처리 유창성, 익숙한 형상이 쉽게 읽힌다 

지난 글에서 어떤 디자인이 ‘쉽다’고 느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보편성, 다른 하나는 반복된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학습성이다. 공간의 안내는 늘 문장으로만 전달되지 않는다. 글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아이콘이나 픽토그램이 상황을 더 빠르게 이해하게 만든다. 

처리 유창성(Processing fluency)은 사람이 어떤 정보나 자극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얼마나 적은 노력으로,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뜻하는 인지심리학 개념이다. 어떤 글, 이미지, 형태, 배치가 빠르게 읽히고 자연스럽게 이해될수록 처리 유창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처리 유창성에 따르면 힘이 덜 드는 정보, 예를 들어 익숙한 형상, 한눈에 구분되는 배치, 선명한 대비처럼 쉽게 읽히는 정보는 사용자를 덜 긴장하게 하고, 공간을 덜 낯설게 느끼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보편성을 가진 정보란 많은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정보일 뿐 아니라, 처음 마주쳤을 때도 해석에 큰 힘이 들지 않는 정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이콘은 많은 사람이 빠르게 알아볼 수 있는 단순한 형상이거나, 행동의 모양을 시각적으로 옮겨서 충분히 행동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빨간색 표지판에 가로지르는 막대기 하나가 더해지면,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무언가를 금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특정 언어를 읽지 않아도, 색과 형태의 조합만으로 의미가 전달된다. 행동을 유도하거나 공간을 이해하게 만드는 과정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래 북유럽 뮤지엄, 도서관의 사이니지 사례를 살펴보자.

아테네움 뮤지엄 : 작품을 만지지 말라는 안내가 손 모양의 아이콘과 X자로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 
오디 도서관 입구 : 반려견, 스케이트 보드, 담배가 허용되지 않는 다는 것이 아이콘과 빨간색 선을 활용해 한 번에 식별할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다.
오디 도서관 앞 중앙 광장의 쓰레기통 : ‘이런 곳 까지 아이콘이 필요할까?’ 할 정도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아이콘이다. 쓰레기 버릴 때 끝까지 밀어넣어야 한다는 것과, 발로 밟으면 된다는 픽토그램이 정확히 안내되어 있다. 사소한 사용의 방식까지도 이해 가능하게 만드는 디테일이 사용자를 얼마나 세심하게 고려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오디 도서관 3층 서가: 유아차를 파킹하는 공간과 유아차 안에서 잠든 아이들을 그대로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따로 구분했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용자의 서로 다른 필요를 알아보고 있다는 점이 인상깊다. 
아테네움 뮤지엄 : 미술관 내 물건을 손으로 만져서는 안된다는 설명, 음식물 섭취는 전시 공간 내에서 금지이지만 모유 수유는 어디서든 가능하다는 안내, 어린이는 항상 어른과 함께 다니되 손을 잡고 다니기를 권장하는 글. 모든 안내가 아이콘과 함께 되어 있으니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복과 패턴이 만드는 힘

공간의 정보는 하나씩 따로 읽히기보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하나의 체계로 이해된다. 게슈탈트 심리학(Gestalt psychology)의 게슈탈트 원리는 사람이 시각 정보를 낱낱의 요소로 보기보다, 비슷한 것끼리 묶고 가까이 있는 요소들을 연결하며 전체적인 패턴으로 파악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같은 색과 형상, 같은 방식의 사이니지가 공간 전체에서 반복될 때 사용자는 그것을 하나의 규칙으로 받아들이고, 더 적은 설명만으로도 공간의 질서를 익힐 수 있다.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무엇을 보여주느냐만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떤 관계로 보이게 하느냐이기도 하다.

예전에 한 공간 자문을 갔을 때, 색상이 이곳저곳에 꽤 복잡하게 사용된 것을 보고 왜 이런 방식으로 색을 썼는지 질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그저 공간을 알록달록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색은 물론 분위기를 만들고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안내를 위한 디자인에서 색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색은 사용자가 공간을 기억하고, 특정 구역과 동선을 구분하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게 만드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안내 사이니지에 쓰인 색상과 형상은 실제 목적지나 해당 구역에서도 일관되게 반복되어야 한다. 처음 제시된 정보가 공간 안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질 때, 사용자는 그 체계를 학습하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 반복이 사용자의 학습을 돕는 방식인 셈이다. 

미디어 뮤지엄 : 외투를 걸 수 있는 락커룸으로 안내하는 사이니지와 실제 락커룸의 사이니지가 동일하게 표기되어 있다. 복도에서 한 번 본 표식을 도착한 자리에서 다시 만나면, 사용자는 직관적으로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디어 뮤지엄은 벽 색상과 아이콘 색을 반전시켰기 때문에 막상 아이콘 색이 다르더라도 인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안내판과 도착지의 표기가 서로 달라 당황하는 경우를 가끔 겪는다. 안내판에서는 어떤 색과 기호로 알려주었는데 막상 도착지는 글자만 적혀있거나 색상이 다른 경우 혼선이 생긴다. 이런 작은 불일치는 공간을 낯설게 만든다.  반대로 하나의 규칙이 끝까지 이어지는 공간은 훨씬 편리하다.
오디 도서관 3층 서가 : “Liiku rauhallisesti.조용히 다녀주세요.” 달팽이나 거북이처럼 천천히 조용히 다녀달라는 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 ‘뛰지 마세요’라고 쓰는 대신, 느린 속도를 상징하는 달팽이와 거북이 픽토그램을 두니 훨씬 부드럽게 이해된다. 규칙은 여전히 분명하지만, 사용자를 곧바로 통제하는 방식이라기보다 공간이 원하는 리듬을 슬쩍 제안하는 느낌에 가깝다. 이런 표현은 안내의 기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공간의 분위기를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든다.

인지적 부담을 줄이는 탐색

작년 여름,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룹을 대상으로 사용자 조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긴 문장 형태의 안내보다도 색상을 통해 공간을 구분하거나 숫자를 통해 공간을 찾아가는 것들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생각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런 특성이 공간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앱을 사용할 때도 비슷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글을 읽고 여러 단계를 해석해가며 이동하기보다,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인 메뉴나 화면에 이미 제시된 선택지를 따라가는 방식이 훨씬 편하게 작동했다.

가령 클릭보다 스크롤링과 같은 동작을 편하게 여겼다. 또 여러 단계를 거쳐 직접 검색을 하는 것보다, 자주 사용하는 메뉴가 가장 접근하기 편리한 위치에 띄워져 있을 때 쉽게 사용했다. 조금 더 상세하게 들여다보자면 검색은 여러 단계를 거치고, 입력과 선택, 결과에 대한 해석까지 요구하기 때문에 인지적 부담이 컸다. 반대로 홈 화면에서 스크롤하며 선택하는 탐색 활동은 화면에 이미 제시된 것을 보면서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더 쉽게 느껴진다. 쉬운 디자인은 공간이든 앱이든 사용자가 긴 설명을 따라가지 않아도, 익숙한 단서를 바탕으로 다음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만든다.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우리가 디자인을 한다고 할 때 항상 특별하거나 보여진 적이 없는 유니크함을 지향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것이 아닌 익숙하고 가장 평범한 디자인이 쉬운 디자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글, 사진 I 김병수 미션잇 대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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