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패키지 디자인은 왜 중요할까? No.97

“청년은 앉아가고,
어르신은 서서가고”

신문을 보는데, 이런 내용이 헤드라인으로 걸려있다. 요지는 설 연휴를 맞아 좌석 예매를 하는데 청년들은 빠르게 앱이나 컴퓨터로 예매를 할 수 있지만, 어르신들은 현장에서 겨우 구매하여 입석으로 고향에 내려간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면 불과 몇 년 전 코로나가 한창이던 당시 마스크 대란이 있지 않았나? 백신 예약도 빛의 속도로 클릭해야 가능했다. 이처럼 정보 접근성은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단순한 편의 문제를 넘어서, 실질적인 생활의 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교통약자 예매가 우선으로 되어있지만, 그럼에도 예매를 놓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 코레일

정보 접근성은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

정보 접근성은 모든 사용자가 장애의 유무나 기술적 능력의 차이에 관계없이 다양한 정보에 쉽고 효과적으로 접근하고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의료 정보, 금융 정보, 위급 상황 안내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제조기업은 소비자가 제품 구매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약품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건강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 Christina

<소비자 기본법>에 명시된 소비자의 여덟가지 기본적 권리 

이러한 책임은 1999년에 제정된 <소비자 기본법>에서도 강조되어 있다. 법에 명시된 소비자의 여덟 가지 권리 중 두 번째로, “소비자는 자신이 선택하는 물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필요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를 정보 접근성과 연결지어 보면, 기업은 모든 소비자에게 제품과 서비스 선택 과정에서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공평하게 제공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부여된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정보 접근성에
가장 소외된 시각장애인

이와 같은 정보 접근성에 가장 소외된 사람은 시각장애인이다. 한번 상상해보자. 전맹 시각장애인은 샴푸와 컨디셔너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것도 정말 처음보는 낯선 제품이라면 말이다. 지난해 말 시각장애인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용자 조사를 통해, 대부분의 기성 제품 패키지가 시각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바로는, 시각장애인은 샴푸와 컨디셔너를 평상시 놓는 위치에 따라 구분하거나, 제품 형상에 따라 구분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은 보통 제품을 놓는 위치를 정해놓는 경우가 많다. 왼쪽 첫번째는 샴푸, 가운데는 컨디셔너, 세번째는 바디샤워 처럼 말이다. 사용하다보면 익숙해져서 제품을 구분지을 수 있지만, 낯선 제품을 처음 맞닥뜨릴 때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 Andrea

물론, 시중에는 샴푸와 컨디셔너를 구분하기 위해 펌프 부분에 약간의 형태 차이를 둔 제품들이 있다. 예를 들면, 샴푸의 펌프에는 작은 돌기가 있고, 컨디셔너의 펌프는 평평하다. 이러한 구분 정도도 사용자에게 분명 도움이 된다. 서로 다른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그러나 패키지 속 내용물은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패키지 디자인 방법

<QR 코드 삽입을 통한 제품 정보 제공> 

우선 QR 코드를 패키지에 삽입하여 제품의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QR 코드를 활용한 정보 제공을 유용하게 생각했다. 이런 경우 QR 코드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해당 부분의 질감을 다르게 하여 촉감으로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만약 촉감을 다르게 하는 것이 재료비 상승으로 이어져 부담스럽다면 특정 방향, 예를 들어 모든 제품의 하단에 QR 코드를 일관되게 배치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제품의 하단에 QR 코드가 있어, 시각장애인 고객이 핸드폰을 활용해 쉽게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라고 안내할 수 있다. 

하지만, 제품별로 QR 코드를 통한 정보 접근에 대한 선호도가 다를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가령 기술 제품이나 의약품과 같이 복잡한 사용지침이나 주의사항이 있는 경우 QR을 통해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유용하다. 하지만 단순 컬러 구분이나, 제품명 구분에는 굳이 QR을 통해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없을 수 있다.

QR코드로 옮겨간 화면에서 중요한 정보만 음성으로 읽어줄 수 있다면 유용하다. 위 이미지처럼 코드가 클 필요는 없다. 제품 패키지 자체에 QR을 넣기가 애매하다면, 매장 디스플레이 시에 QR코드를 제공하는 것도 아이디어. © Albert Hu

QR 코드로 지나치게 많은 양의 정보 전달은 주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필요한 정보만 선별하여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제품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보이스 오버 기능을 통해 페이지의 중요한 정보를 파악하는 시각장애인이 스크롤 압박을 느낄 정도로 긴 제품 상세 설명 페이지를 계속 듣기에는 불편하다. 만약 현장에서 구매하는 데 도움을 주는 용도의 QR이라면 제품명, 가격, 제조 연월 등 제품을 구별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만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어떤 정보를 어느 정도로 포함할지는 직접 고객 조사를 통해 결정할 것을 권장한다.

고대비로 중요 정보 강조하기

QR 코드를 통한 정보 제공이 유용할 수 있으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매번 QR 코드를 스캔하는 과정이 사용자에게 번거로움을 줄 수 있다. 간단히 둘러보기만 해도 수십 가지의 제품을 마주하게 되는 데 이걸 번번히 QR로 찍는 다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 이에 따라, QR 코드 삽입이 적합한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을 신중하게 선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프라인 제품 구매 시에 시각장애인들은 Seeing Ai나 설리번과 같은 OCR어플리케이션(광학 문자 인식 기능을 통해 인쇄된 문자나 텍스트를 디지털로 변환하여 읽어준다)을 활용하여 정보를 탐색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시각장애인들이 OCR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제품을 잘 확인할 수 있도록, 중요한 정보를 높은 명도대비로 통해 모아 놓는 것이 좋다. 이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에게도 도움이될 뿐더러 제품의 특징을 빠르게 파악하고자 하는 비장애인에게도 유용하다.

OCR 프로그램을 켜 놓고 정보를 확인하면서 제품을 구매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기 때문에, 잘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분류해 놓는 것도 방법이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은 핸드폰 카메라 앱을 돋보기 처럼 확대해서 보기도 한다. 명도 대비 역시 중요하다. © microsoft

패키지에 점자 표기하기

제품 패키지 자체에 점자를 표기하는 방법도 있다. 아래 Olay Easy Open Lid 제품을 참조해보자. 뚜껑에 점자 ‘페이스 크림’을 표기 해놓았다. 또한 이 제품의 포인트는 손가락에 힘을 정확히 주기 어려운 상지 지체 장애인들의 사용성을 고려하여 패키지를 만든 것. 영상에서 기존에 자신들이 만들었던 패키지 사용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롭게 개선한 점이 인상깊다.

국내에서도 닥터G, 에스쁘아에서 화장품 패키지에 점자를 표기해 놓았다. 소수의 브랜드만 패키지에 점자를 표기해 놨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제품에 대한 고객 충성도는 상당히 높은 편.

별도의 스티커 제공 

작년 말 아모레퍼시픽에서 화장품 사용 편의를 위한 점자 스티커를 제작해 복지관, 특수학교 등 기관에 무상으로 배포했다. 스킨, 로션, 샴푸, 린스 등 주요 10가지 카테고리를 점자로 표기하여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붙일 수 있게 제작한 점이 인상 깊다. 좌측은 저시력자를 위한 고대비 스티커이고 우측은 전맹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점자 스티커다. 사실 제품에 금형으로 직접 점자를 넣는 것은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이렇게 스티커를 별도로 제작하여 기존 제품에도 부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 아모레퍼시픽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정보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언박싱 Unboxing 부터

제품을 처음 개봉하는 언박싱 순간은 언제나 기대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사용자들을 만나보면 제품 사용 시 “처음에는 항상 도와줘야 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스스로 쓸 수 있으면요?”라고 되물어보면,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그게 가장 좋은 제품”이라고 한다.


제품을 사용할 때만 사용자 경험이 아니라, 언박싱하는 순간부터 사용자 경험이다. 가장 이상적인 사용자 경험은 모든 사용자 경험의 단계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정보를 인지하고, ‘개인의 의지대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제품들이 더 많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글 김병수(hello@missionit.co)

주식회사 미션잇 대표로, 장애인과 고연령층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연구한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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